<작품 해설>
배꽃 그림자를 찾아 떠도는 역마살의 혼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에 접근하기 위한 극히 제한적인 길 안내
                                                                                         최 대 순


1. 프롤로그

자칫 이런 종류의 글이 독자 개개인의 작품을 통한 다양한 정서적 반응을 차단하거나, 오도 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그의 소설 속에 반복되는 '배꽃의 이미지'와 '떠돌이의 혼'이라는 극히 한정적인 접근으로 유금호의 소설세계에 대한 길 안내의 일부를 맡도록 하겠다.

유금호에게 소설집으로 여섯 번째인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에 대한 관심은 수록된 11편 소설이 최근 2, 3년의 작업이어서 유금호가 '작가의 말'에 밝힌 대로 그의 작품세계에 '여정에서 잠시 되돌아보는 간이역'의 의미를 충분히 가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99년 출간된 그의 대표적인 장편 <내 사랑 風葬>이 80년대 음울한 청춘의 자화상을 현실과 신화 속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독특한 서술을 통해 끈적거리는 유화(油畵)의 느낌으로 독자에게 기억되었다면, 이번의 11편은 한 편 한 편 수채화 풍의 간결한 독립성을 지니면서도 천경자의 뱀 그림같이 똬리를 틀고 서로 엇물려있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하노이, 흐리고 가끔 비>의 강한 역사 인식과 실존의 문제는 전혀 다른 서술 양식인 전라도 사투리의 독백체 소설<상사화 꽃 다 지고>와 <겨울 바다, 잠시 비 내리고>의 심연의 지층으로 연결되면서 인간 의지로 피해갈 수 없는 실존의 비극성에 대한 수용 자세를 보이고 있다.

<OUT OF AFRICA>는 <암보셀리, 그 사바나의 새벽>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신밧드의 모험>과 <시실리에서>가 역시 떠나기의 충동 공간과 일탈의 꿈으로 얽혀 있으며, <배꽃 그림자>와 <흔적, 혹은 물거미 집>,<꿈꾸어주는 사람>,<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들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이 씨줄, 혹은 날줄로 연결되면서 원시성, 혹은 유년의 시공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11편 전체를 관류하는 '처연한 배꽃'의 이미지가 숙명적 비극의 체취를 풍기면서 일탈의 갈증 속에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헤매다 바닷가 술잔 속에 별이 되어 내려앉기도 하는 이 집시적 혼령의 실체가 무엇일가.

<작가의 말>을 통한 다음의 육성은 이 '떠돌이 혼'의 실체에 접근하는 하나의 키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달이 떠오르는 아마존 강, 음습한 수초에서 인디오들과 악어 잡이도 해 보았고, 몽골 바양고비 초원의 새벽, 장작불이 타고 있는 '겔' 천장 꼭대기로 기어들던 주먹 만큼씩한 새벽 별 앞에서 울먹인 적도 있습니다. 안데스의 마추픽추, 그 잃어버린 도시의 한켠, 장의석 앞에 서서 천길 골짜기를 흘러가는 우르밤바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소주를 마셔보기도 했고,.....

내가 속해 있는 곳의 관습과 공기와 물의 냄새가 다른 세계를 그토록 찾아 헤매고 다녔지만 그러나 결국 나는 쓸쓸한 얼굴의 나 자신과 마주 하는 것으로 그 여행이 끝나는 것을 자주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2. 배꽃의 비극적 냄새와 그 그림자

그의 소설에 나타났다가 잠복하고 다시 고개를 드는 배꽃의 실체를 작가는 표제작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라호 태풍이 지나고 난 뒤 그해 우리 배 밭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봉지 속 배 열매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잎사귀와 가지들 역시 참혹하게 꺾여져 흩어졌다. 배 봉지를 만들었던 신문에 인쇄된 서양 여자 얼굴과 영어 글씨들도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찢겨나간 잎사귀에 섞여 땅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렇게 혹독한 여름을 지나면 가을이 되어 몇몇 배나무는 배꽃을 피운다. 내년에 피워야 할 배꽃이 잎과 함께 벌거벗은 가지들을 일부 채우는 것이다.

심한 태풍은 그래서 연 2년의 과수원 농사를 망쳐버린다.

그러나 그해의 가을 배꽃.... 원래 다른 꽃보다 배꽃은 푸른색이 돌만큼 흰빛이어서 이상한 차가움을 풍긴다. 더구나 초가을 싸아하게 피부에 와 닿는 냉기 속의 배꽃은 푸른빛이 더욱 선명하게 전해진다.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내년 봄, 피어야할 배꽃의 가을 개화는 이미 숙명적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가을 배경 속에서 푸른빛을 띄면서 이 배꽃의 이미지는 결국, 죽음과 숙명 같은 피할 길 없는 삶의 비의에 맞닿아 버린다.

결국 <배꽃 그림자>속 배꽃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친구 누이는 죽은 이복 동생의 명복을 빌기 위해, 손가락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이고, 다시 불을 붙이는 소지공양(燒指供養)의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섬뜩한 금기의 사랑을 보여준다.

창 밖으로 계속 비가 뿌리고 있는 오늘, 앞으로 모아 쥔 그녀 손은 맨손이었다.

오른손으로 싸 덮은 그녀의 희고 가는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친구를 화장(火葬)하여 강물에 뿌려준 날도 그 누이의 얼굴에서는 처연한 배꽃의 분위기가 느껴졌을 뿐 표정이 없었다. 푸른빛 돌도록 창백하던 볼 위로 그때 역시 그렇게 눈물만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배꽃 그림자)

배꽃의 이 처연한 이미지는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에서 나비 떼로 바뀌기도 하고, 아득한 유년의 시간으로 전이되는 타임 머신의 입구가 되기도 하면서, 가끔은 추상화되어 다른 꽃향기로 환치되기도 한다.

히비스커스, 부겐빌레아, 바오밥, 소시지나무와 봉황목 꽃들이 내 뿜을 수 있는 온갖 향기가 모두 합쳐서 섞인 뒤, 정제된 수잔의 냄새가 되어 내 혼의 뿌리로 스며들었다.

(암보셀리, 그 사바나의 새벽)

마침 공포와 호기심 담긴 검은 눈의 이국 소녀를 열대의 짙은 수향(樹香)과 함께 마주했다면..... 나는 한 순간 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노이, 흐리고 가끔 비)

아프리카의 원시적 공간 속, 문명과 상치된 순수의 상징으로 해체되어 수잔의 체취로 태어나는 꽃 냄새는 베트남 밀림 속에서 이국 소녀의 체취로 추상화되었다가 <시실리에서> 는 금목서 향기로 샤샤의 체취로 변형된다.


잠에서 반쯤 깨어 꿈과 현실이 구별 안 되는 의식의 경계에서, 때로 살아나는 대숲을 지나던 바람소리, 파도소리와 돌탑, 더구나 그 금목서 향기와 샤샤의 그윽하던 눈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녀 여리디 여린 열 손가락을 차례로 입 속에 집어넣으며 깊이 숨을 들어 마셨다. 아주 깊게 콧속으로 스며들어 온 꽃 냄새.. 네 냄새였구나.

얼굴 가득 빗물을 받으며 아득한 현기증 속에서 샤샤의 체취를 나는 처음으로 깊게 맡았다. (시실리에서)

거부할 수 없는 그의 깊은 선의식(先意識) 안에 각인 된 배꽃 냄새가 어차피 추상화된 '낙원'의 흙 냄새라면 유년시절 태풍 지난 과수원의 가을 배꽃과의 대면은 기대 불가의 절망이다.

그렇다면 그의 여정의 모색 자체가 출구 없는 비극의 확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주인공들은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나고 있기 때문에 그 떠남 자체가 예정된 근원적 허무이고, 비극의 확인일 터이다.


3. 찾아 헤매는 길 떠나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현재적 삶의 일탈, 현실 공간에서의 길 떠나기의 숙명적 역마살 속에 허덕이는 모습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일상생활과 멀리 떨어진 공간 <하노이>로, <인도>로, <남미>와 <호주>,<아프리카>의 <암보셀리>로 기를 쓰고 움직여가고 있는 그의 인물들은 최소한 현실적 생활 공간인 번잡한 도시를 떠나 겨울 비 뿌리는 바닷가에라도 가서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 속에 있다.

그 여정의 충동은 때로 시간을 거슬러 공룡시대의 공간 <우항리> 바닷가에서 비에 젖기도 하고, 안개 속을 의식이 흐리도록 비틀거리며 다니게도 하고, 지도에도 없는 4차원의 <시실리>에서라도 잠시 머물 수밖에 없다.

집 뒤에서 시작된 낮은 동산이 왕대나무 숲이었고, 그 뒤로 산 정상까지는 왼 통 늙은 소나무였어. 솔바람 소리와 대나무 잎을 스치는 사그락 거리는 소리, 거기에다 해안을 훑고 가는 물소리가 밤이면 같이 섞여서 들려 와. 그렇게 편하고 마음이 가벼울 수가 없었어.....식구 수만큼 소금만 뿌려 구운 팔뚝 굵기 생선 한 마리씩에다, 삶은 물새 알, 잡곡밥하고 푸성귀, 내 피부가 좀 맑아진 것 같지 않나?(신밧드의 모험)

도대체 왜 그의 주인공들은 현재적 상황에서 끝도 없는 일탈을 시도하는 것일까.

그 단서의 하나로 <시실리에서>의 주인공이 그 고뇌의 일부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토록 빛나던 빛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자랑스럽던 언어 구조물들이 서서히 금이 가고 와해되어 쏟아져 내렸다. 한 순간 접착력을 잃은 언어의 조각들은 몇 개의 단락으로 해체되면서, 문장들로 나뉘어져 질서를 잃고 유령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단어의 조각들로, 끝내는 자음과 모음으로, 부서져 그 구조물들은 끝내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응집력을 잃어버린 언어의 조각들은 깨진 사금파리 가루였다. 한때 빛을 반사했던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색깔들로 방향을 잃은 채 날뛰다가, 이제 도리어 젊고 촉망받던 제 주인을 향해 날을 새우고 비수가 되어 달려들고 있었다. 풍화되어버린 언어의 조각들, 언어의 시신들의 그 질서 없는 날뜀이라니. 바늘 조각같이 언어의 모래 바람은 이제 작가의 발목을, 다리를, 온몸을, 심장을 찔러대며 저희의 시체로 덮어 가는 거였다. 언어들이 일으키는 잔혹한 보복이라니....

(시실리에서)

한참 잘 나가던 유망했던 젊은 작가가 주인공인 <시실리에서>의 화자가 느끼는 이 열패감은 우리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언어 조건마저 거부하는 공간을 꿈꾸게 했는지도 모른다.

평론가 임헌영은 <암보셀리, 그 사바나의 새벽>의 그 이질적인 공간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작가는 이 둘의 섹스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국의 어디서나 재회하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 흔하디 흔한 섹스를 위하여 왜 먼 아프리카까지 가도록 만들었을까. 무병에 걸려 죽어버린 어머니의 원시적 회귀 욕구가 그녀를 부추겼고, 그런 그녀와의 섹스를 통하여 나는 "문명과 야만이 상치되는 것이 아니고, 전혀 다른 차원에서 공존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레비-스토로스의 '슬픈 열대'의 한국적 도입일까? 오히려 샤머니즘의 원형 찾기가 더 적격일 것 같다. 수잔도 이미 무병에 걸려 버렸고, 나도 감염되었으며 그게 오히려 문명으로 위장된 우리 삶의 실체를 드러내주는 참 자아임을 이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다.

평론가 김상일의 <OUT OF AFRICA>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에서도 현실적 시공간을 떠난 시공간에 대한 염원의 설명이나, 역시 같은 작품에 대해 평론가 김종회의 시각에서도 이 작가가 그토록 빠져나가고자 하는 현실적 시공에의 탈출의 꿈을 확인한 듯이 보인다.

얘기는 문제의 아프리카 무대다. 독자가 주목해야할 시퀀스는 수사자의 잔혹 무비한 본능적 행동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사자의 새끼 죽이기. 그런데 주목할 소설 구조상 기법은 새끼 죽이기를 몇 번이고 보여주는 것이다. 소름이 끼쳐올 만큼 잔혹하다..... 또 하나, 초원에서 야영을 하던 한 인물이 밤사이에 행방불명이 된다. 온 밤을 연신 우우웅 우우웅..하고 수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 온 것으로 미루어 맹수의 습격을 받았을까 하는 암시가 없지 않았다. 해답이 없이 소설은 막을 내린다.

분명한 것은 반복되는 시퀀스와 말미처리가 고전적 소설작법과 다르다는 점인 것이다. 독자가 의미를 산출해야겠지만 예의 수사자는 공포를 생산하는 권력으로 해독할 수 있고, 죽음을 생산하는 가뭄, 홍수, 궤도 없이 맹수처럼 질주하는 현대문명의 한 결론을 환유하고 있다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동부 아프리카 케냐를 찾아가는, 그리하여 사뭇 이국적인 풍광과 유다른 습속을 보여주는 남자 이야기.....실상 암보셀리 공원은 일찍 헤밍웨이가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을 바라보며 사냥을 하고 작품을 썼던 곳....누구나 쉽게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땅이며 그런 만큼 그 풍물에 대한 서술만으로도 소설거리가 될만하다. 그런데 이 소설이 일정한 값어치를 하는 것은 그 새끼 사자의 잔혹한 죽음을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키는 치밀한 조작의 기능이 선명한 실감으로 작동하는 까닭에서이다. 그의 삶에 아프리카가 숨어 있고, 아프리카는 그의 삶을 되 비추는, 마치 사물과 거울의 유기적 존재 양식을 닮았다 할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결국 작가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공간을 실제에서 찾지 못하고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4차원에서까지 찾으려 하고 있음을 평론가 김정진이 놓지지 않고 있다.

중견작가의 속내를 그린 <시실리에서>는 2,3십년 소설을 집필한 중견작가의 일면을 간파한 작품이다. 작중 배경으로 등장하는 배경은 그에게 전성기 이후 퇴조한 작가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 역시 지난날의 실제가 한낮 환상이었다는 인식에서 재출발을 도모하게 된다. 작가가 30대 초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마을인 시실리는 한창 전성기가 지나 방황할 때 우연히 들려 샤샤를 알게되고, 자신의 글쓰기가 위선과 거짓과 오만이었음을 일깨워준 공간. 때문에 기억과 인식과 환상이 어우러진 공간은 의 그 강렬한 추억은 언제나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4. 잠시 멈추어서 확인하는 것들

그럼 그렇게 헤매고 다니던 작가가 멈추어 서서 숨을 돌리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어차피 인생의 모든 여정은 종착역이 있기 마련이고, 작가는 그의 역마살 의 간이역에 서서 지나온 여정을 되돌아본다.

내 우둔한 탈출 시도가 현장법사 손바닥 안을 맴돌던 '西遊記'의 손오공처럼 종착지에서, 여전히 누추한 자신의 영혼을 마주하는, 똑 같은 상황을 맴돌고 있었다는 자괴와 허무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작가의 말 중에서)

그는 결국 숨을 고르고 그가 그토록 힘들게 찾아다녔던 유년과 순수가 공존하는 공간의 부재를 확인하고 이제 그 허무감 속에서 다음 여행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점에 대해 평론가 송선령의 말을 빌어보자.

<하노이, 흐리고 가금 비>에는 베트남과 우리 역사가 중첩되어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한사코 외면하고 싶었던 나라, 베트남. 전쟁을 통해 오욕을 묻고 온 그 나라에 17년만에 다시 들어가면서 우리는 한국인의 내면을 다시 드려다 보게 된다....한국 기업들이 베트남에 가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한편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베트남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현실 앞에서 하노이의 역사는 방황하는 영혼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한국인을 붙잡고 있다. 뼈를 씻어 먼 이 축복의 땅으로 보낸다는 티와 의식이 진정한 죽음으로 가는 절차라면 한국인들에게도 이런 상징적인 티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인간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유금호의 베트남 연작은 계속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 싶다

이런 지적이 아니라도 그의 방황은 비 내리는 베트남의 논 한 가운데에 있는 무덤 앞에서 눈물과 빗물로 비석을 씻는 '티와' 의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빗물이, 오랜만에 흘려보는 내 눈물이, 희생물의 피 대신 비석을 적시는 동안, 형의 영혼을, 아버지의 영혼을, 내 어머니의 영혼을 자유롭게 떠나 보내는 '티와' 의식을 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노이, 흐리고 가끔 비)

여기서 흘러내리는 빗물에 섞인 내 눈물은 <상사화 꽃 다 지고>에서 겨울 바닷가에서 흩뿌리는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확인으로 이어지고, <겨울 바다 잠시 비 내리고>에서 죽은 아내의 영혼을 향해 살아생전, 가난 때문에 못해주었던 금반지 한 개를 바다에 던져 줌으로 해서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인연의 가닥을 잡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문둥병 걸린 아이를 위해서 죽은 송장의 살을 잘라다 삶아 먹이는 모성으로 맨 처음 배꽃의 이미지는 확대되면서 다시 원점에 이른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차원을 뛰어넘는 인연과 삶의 비의에 대한 작가의 자각과 연관된다.

"혼자된 아편쟁이 여동생한테 애가 하나 있었는디, 고것이 문둥병이 걸렸다 안 하는가....고걸 소록도로 보낼라고 여그로 데려 왔던 모양인디...연지 아지매가 집에다 두고는 사람 고기를 삶아 멕여 고쳤다는 소리가 있었어."

"사람 고기를?"

"아, 우리 어렸을 때 문둥이가 애기들, 간 빼 먹는다고 안 그래 쌓는가? 참말인지는 모르제..... 비봉산에 애기 송장 뉘어놓고 왔다하먼... 연지 아지매하고, 동생이 그 밤에 가서 애기 송장 다리 하나씩을 짤라다 삶아 멕였다는 것이여."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그래서 송선령은 유금호의 소설에 '죽음'이나 '노년'이 되는 것까지도 아름답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얀 배꽃 속에서 죽은 동생과 장 쥬네의 소설을 생각하는 화자. 그 화자가 어린 시절 고향 친구들과 벌였던 짓궂은 장난들은 이제 배꽃 향기에 묻혀버리고 삶은 그렇게 지나간다. 한잔 술을 마시며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영혼들을 반추하며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 역시 더 없이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