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데이트> 해풍이 느껴지는 남도사내
이 시대 마지막 베가본드, 작가 유금호    
         
                                                                            이명지 기자(토요저널)

 작가 유금호 선생(63. 목포대 국문과 교수. 송파문학회 명예회장)을 만나러 갔다가 뜻밖에 헌걸찬 한 사내를 만났다. 뱃사람한테서나 맡을 수 있는 비릿한 바닷내음, 해풍의 바람결에 날리는 듯한 길지도 짧지도 않은 반백의 머릿결이 역동적인 사내, 예순을 훌쩍 넘긴 그에게서 사내, 아니 수컷의 야성을 보았다고 하면 결례일까.
 누가 그를 내년에 정년을 앞둔 노교수라 할까. 그는 아직도 봄밤 흐드러진 벚꽃만큼이나 정염어린 청춘의 연장선상에 서 있어보였다. 창작에 대한 열정은 사람의 신체적 나이를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는 것인지, 최근 그의 왕성한 집필활동을 보면 그의 넘치는 활력이 어디서 생성되는지 알 듯도 하다. 
 지난9일 최근 발간된 자전적 산문집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었네 > 팬사인회를 가진 영풍문고에서는 소리꾼 장사익을 비롯한 팬들이 긴 행렬을 이루며 장사진을 쳐 작가로서 선생의 명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지난해 출간한 역사장편소설 <만적1.2> 역시 서점가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을 다투며 독자들의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거기에... >는 그가 최초로 쓴 자전적 산문집이라는 데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전원일기’의 작가로 잘 알려진 방송작가 김정수 씨의 부군이기도 한 선생은 누가 더 유명한가라는 짓궂은 질문에 서슴없이 “아내가 훨씬 유명하다”고 말해놓고 호방하게 웃는다.
사실 그는 무척 애처가다. 월요일에 내려가서 금요일까지는 근무지인 목포에서 지내다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올 때는 항구에서 싱싱한 어물들을 사가지고 와 직접 요리를 한단다. 아나고 구이를 특히 잘 한다는 선생은 술을 못하는 아내대신 가끔은 다 큰 딸(수지:28)과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단다. 원양어선의 어부처럼 그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들에게 부려놓는 것은 해물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짧은 이별 뒤에 오는 반가움이며 가족에 대한 살가운 정, 더러는 먼 바다의 파도소리, 고향 내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내가 그리 오랜 세월 농촌드라마를 쓰는데 든든한 조력자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20여년을 이렇게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살았다. 인생의 상당부분을 하늘과 땅, 소위 길바닥에서 보냈기에 여행에 이골이 났을 법도 하건만 그는 시간만 나면 세계오지를 두루 섭렵하고 다닌 타고난 베가본드다. 그의 이런 역마성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바로 <거기에...>이다.
 그동안 작가로 살아온 세월 속에 앙금으로 남아있던, 소설로 변형할 수 없는 원초적인 질료들과 아픔들, 그리고 직설적으로 내뱉고 싶었던 발언들을 모은 이 책에는 유년과 성장과정 속의 이별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문명에 비켜선 세계 오지를 헤매면서 느낀 감정들을 제1부에 담았고, 제2부에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 있는 ‘있음’에 대한 새로움을, 제3부는 지중해 통신, 제4부 알래스카 통신에 이어 제5부에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보내는 편지’ 편으로, 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작가의 숙명적 역마살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소설가나 시인도 때로는 자기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고, 오히려 이처럼 형식에 여과되지 않은 자유로운 글들이 작가의 내면에 더 진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산문집을 발간하게 됐다”는 선생은 이 책에서 윤색되지 않은 자신의 진솔한 육성과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함께 실었다. 이 책은 특히 지금까지 그가 써온 수많은 소설작품들의 근간을 추적할 수 있는 텍스트로써의 의미도 커 유금호라는 한 작가의 인간적 내면과 작품세계를 한꺼번에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의 가치도 갖고 있다.
 한편 작년에 출간돼 현재 재판에 들어간 그의 소설<만적1,2>에 대해 작가 조정래는 “소설이 품고 있는 재미와 유익함은 산문정신에서 비롯되는데 소설에서 산문정신이 증발하고 있는 이 시대에 <만적>은 산문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꽃피운 문장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인간사의 애절함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작가 김주영도 “역사 속에서 실패한 쿠데타로 굳어버린 <만적>의 처절한 자유에 대한 꿈과 의지가 작가 유금호를 만나면서 피투성이 사내의 시신 앞에서 손가락 끝에 불을 붙이고 또 불을 붙이는 금소예의 원시적 사랑과 함께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 역시 “<만적>은 과거 역사 속의 한 사건에 대한 재구성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에 대한 꿈과 의지, 그리고 순결한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우리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만적의 난은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했고 만적은 강물에 수장되었지만 자유에 대한 그 치열한 의지만은 우리 민족혼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광주항쟁 때 생떼 같은 제자들이 총 맞고 분신하여 생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고 10년간이나 필을 꺽었다는 선생은 그런 현실에서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 후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것이 <만적>이니 봉두난발한 한 사내의 자유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대를 초월한 또 다른 모습으로 작가 유금호에게서 유추되는 이유가 짐작될 것도 같다. 
 문학과 활자가 죽었다는 세태에 대해 “사진이 나왔을 때 그림이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아무리 영상이 뛰어나도 활자가 가진 상징성은 따라가지 못한다. 문학은 문학대로의 가치로 살아있을 것으로 본다”는 그는 “그러나 작가들은 변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고루한 방법으로는 소통이 어려워진다. 날이 갈수록 기호화되고 특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문학의 코드 역시 ‘소통’이다. 작가들은 이러한 소통의 코드를 제시하고 만들어 갈 수 있어야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공항에서나 학교에서나 해외에서나 그의 손에는 항시 노트북이 들려져있다. 언제어디서나 IT의 코드로도 소통이 가능한 사람, 그에게 ‘노교수’라는 말이야말로 결례이다. 정신으로든 외적으로든 헌걸찬 청년의 모습을 한, 저 봄볕에 나날이 피어나는 버들만큼이나 싱그럽게 펄럭이는 그에게는 아직 ‘사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림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