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소설가 유금호 선생님과 함께 인생과 문학 수놓기.

                                                                     대담: 박유하(소설가)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오늘 선생님을 부각시키려는 칭찬 일변도의 인터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대담은 별 의미도 재미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큰 나무의 면목을 지니고 계십니다. 큰 나무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지요.

다른 사람 같으면 크게 화를 낼 일도 선생님은 허허 웃어넘기시고 웬만한 사람은 다 품어주시지요. 따뜻하고, 신중한 분입니다. 하지만 큰 나무 밑에는 그만큼 짙고 넓은 그늘이 깔리게 마련인 자연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고, 거기에 초점을 두고 얘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불휘 깊은 남간 아니 뭴세, 라고 훈민정음에서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천적, 임자를 만난 셈입니다. 혹여 화가 나시더라도 철모르는 바람이 불고 있구나 하고 굳세게 우뚝 서 계십시오. 
 
 
박유하: 이번에 간행된 신춘문예 걸작선에 실린 '하늘을 색칠하라'를 보고 선생님도 이런 소설을 쓰셨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제목만 볼 때는 동화적인 소설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선생님의 근래 작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피가 돌고 눈물이 흐르는 인물이 등장하더군요. 선생님 고향이 소록도가 건너다보이는 녹동이라는 이유 말고 이 작품을 쓰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유금호: 소록도가 건너다보이는 포구에서 자라면서 소록도의 특수한 공간을 바라 볼 기회가 있었던 것이 큰 이유이겠지요. 그러나 어떤 상황이나 사건도 작가에게 직접 충격이나 의미로 와 닿지 않으면 작품으로 쓰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박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60년대는 한창 실존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여서 소록도라는 특수한 공간과 상황에서 인간 존재의 한 전형을 느꼈다고 할까, 뭐 그런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갇혀 있는 인간의 한계상황, 그것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결국 허무로 귀결되는 한 패턴을 소록도에서 느꼈고, 그래서 그걸 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근래의 내 소설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느끼셨다고 했는데, 그 문제는 읽는 사람 나름의 자유로운 판단이지요.

나로서는 갇혀 있는 상황과 그 탈출의 시도, 그러나 결국 벽에 부딪쳐 주저앉는 그 '자유를 위한 몸부림과 허무로의 귀결, 문제는 변함없이 계속되어 온 내 소설의 성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최근에 발표한 장편소설 '만적' 역시 같은 궤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유하: 그러고 보니 그 나이에 소록도처럼 실존적 한계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을 착목하셨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소록도는 천형(天刑)이니까요. 만적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점차 신비주의로 기울어진 감이 있었지요. 그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유금호: '만적'은 '고려사절요'에 나온 몇 줄이 자료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혁명은 미완의 실패였다는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은 바꿔질 수 없고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에 한계로 작용합니다. 그 한계를 우회하면서 신비주의랄까, 환상적 분위기 속에 그 한계를 희석시키려 한 것 같습니다.  

박유하: 아까 제가 놀랐다고 했는데요, 나병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데도 자식과 이별하기 싫은 나병 환자가 자식의 몸에 상처를 내어 진물을 발라주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제 사견이지만 소설은 당위적인 인간과 자식을 나환자로 만들어서라도 함께 살고 싶은 인간적인 인간 사이에서 솟아나는 생명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인간이라면 소설에 등장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놀랐고, ??하늘을 색칠하라?? 라고 하는 제목이 함유하고 있는 적극성, 구호와 같은 외침이 주는 목청에 놀랐습니다. 선생님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이지요. 등단 초기에는 이런 경향의 작품을 쓰셨나요?


유금호: 실제 소록도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사실로 더러 일어났었습니다.

모성애라는 것이 맹목인가, 이성적 판단이 개입되는가,의 문제는 해답이 없지만 이성간의 사랑에서도 이 문제는 똑같이 제기될 수 있고, 그 답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적극성 문제를 이야기 하셨는데, 젊은 시절에는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시절, 4.19와 5.16을 연거푸 겪었고, 손아래 동생을 잃고 하면서, 분노와 투쟁이랄까, 그런 쪽의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실제 '자유가 보이는 장의행렬'이라는 여순사건을 다룬 장편을 20대에 쓰다가 반공법으로 힘이 들기도 했고, 시골학교 선생을 하면서 '국정교과서 이상 있다, 문교부 장관 답하라.' 같은 건방진 글을 신문에 써서 직장을 쫓겨나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세미다큐멘터리로 '농민은 농협의 것'이라는 제목으로 농촌 현실을 당시 '농민' 잡지에 연재하다가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살아오면서 문학이 현실과의 직접 대결은 아니다??라는 인식이 오기 시작했고, 문학은 보다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로 독자의 가슴에 근원적인 질문과 의문과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박유하: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많이 만나 뵙고도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유가 보이는 장의행렬'을 다시 쓰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왠지 절절한 얘기가 있을 것 같거든요.

유금호: 사람마다 능력과 취향이 다르듯 작가도 모든 문제를 다 다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여순사건이 주는 의미는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안에서 충분히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박유하: 그렇다면 저잣거리의 잡답 속에서 찧고 까부르며 피와 땀, 눈물을 흘리는 인간형이 등장하지 않는, 고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조적인 작품, 예를 들어 여행 소설이나 역사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유금호: 사실 만적은 역사소설이지만 실제로는 현실 비판적이고 투쟁적 작품입니다. 군사정권 때 시작했다가 그 혁명적 발상 때문에 중단 압력을 받았고, 그 후 한때 펜을 꺾었습니다. 10년을 쓰지 않았고, 문학하는 사람들과도 교류를 완전히 끊고 목포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나이를 먹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죽고, 그러면서 내 관심의 영역도 변모를 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유하: 그런 것 말고 변모를 보이게 된 다른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금호: 문학이 배고픈 사람에게 한 조각의 빵이라도 될 수 있는가, 억울하게 죽고, 다치고 갇혀 있는 사람에게 한 끼의 사식(私食)이라도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에 한 때 심하게 빠져 있었습니다.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타버린 내 제자들의 젊은 열정 앞에 내 글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고 위선적인 것인가, 괴로워도 했습니다. 그리고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게 10년입니다. 그러나 다시 더 세월이 더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차피 문학은 직접적인 투쟁의 도구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어차피 문학은 근원적인 인간의 감성에 뿌리를 내리고, 감동으로 세계를 서서히 변모시키는 것이라는 생각, 눈앞의 현실과 직접적 투쟁이 문학의 본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왜냐면 시대와 상황이 바꾸어졌을 때도 그 작품이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박유하: 어쨌든 근래 작품은 관조적이고 환상을 차용하기 때문에 읽기 편한 대리 체험을 주고 계십니다. 소설의 그런 정화와 위안의 기능은 독자를 즐겁고 행복하게 합니다.  그 이상 다른 것은 추구하고 싶지 않으신지요?

유금호: 우리 문학이 80년대까지 주로 현실 문제에 맞서는 큰 목소리가 문단을 지배했고, 그 여파로 문학의 예술성, 혹은 언어예술에 대한 회의가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반대급부가 최근 일부 소위 서사 상실, 미시 담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소설의 1차적 특질인 서사 기능의 상실에는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이야기하기'의 방법에서는 옛날식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차원으로는 안 된다. 어차피 소설 자체가 현실 그대로가 아니니까 그 서술방법으로 환상의 차용도 때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박유하: 현실에 맞서는 목소리 큰 문학은 이제 한 물 갔지요. 저는 생활의 고통이랄까 질곡이랄까, 하는 생활 진진한 현장에 초점을 맞추는 문학에 대해 말씀 드린 것인데요?  

유금호: 조금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 능력이 다릅니다. 그쪽은 그쪽대로 잘 쓸 수 있는 다른 동업자가 써야지요. 박 선생님이 그 쪽은 좀 맡아주시지요.

박유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군요. 후유....선생님 주변 사람들은 아마도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실은 선생님은 작품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관조적이십니다. 가령 선생님은 구두선처럼'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외부의 일은 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겠다는 뜻이겠지요. 여유와 관용이 보이지만 굉장히 소극적이고 인간의 냄새가 결여되어 있어요. 젊은 시절부터 그러셨는지, 세월이 흐르고 연세가 들어 그렇게 되셨는지요? 타고난 천성인지요? 아니면 신념인지요?

유금호: 사실은 어렸을 때 별명이 '찍보'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면 머리통을 마당 돌멩이에 찧어서 피가 줄줄 흐를 때까지 고집을 부리고 했어요. 살아오면서는 내 한계를 알게 되고 상처입기 싫으니까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아왔지 않나,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여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게 '에고이스트'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게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지독히 고약한 선생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확실한 것 하나는 있습니다. '내가 조금 손해보고 살자.'입니다. 그럼 편해지거든요. 그러나 내가 지키고 싶은 어떤 선,이랄까,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고 살았으니까 에고이스트이지요.

 박유하: '내가 조금 손해보고 살자' 이 '조금'이 비결이라는 것, 하지만 '조금'은 결코 쉬운 게 아니지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 '조금'이 미치는 파장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슬슬 그늘이 펼쳐지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선생님께는 에고적인 면도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면도 있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가 하면 저렇고 저런가 하면 이런, 어찌 보면 큰 나무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점을 그렇게 고약하게 여겼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금호: 대학원에 한국 학생들 외에도 유학을 온 중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도 있습니다. 한번은 한 중국 학생이 심각한 얼굴로 너무 힘이 들어 휴학을 하겠다고 그래요. 명색 내가 지도교수인데 아니다, 싶어 어느 교수 과목 때문이냐고, 내가 직접 만나서 조금 편하게 공부하도록 상의를 하겠다고 말렸는데...한참 후에 머뭇거리다가 바로 나 때문이라는 거예요. 충격을 받았고, 반성도 했습니다. 편하게 대해주는 것 같은데 점점 내가 목표한 곳 까지 결국 끌고 올라가서 숨이 막힌다고 그래요.

박유하: 그것도 결국 제자 사랑 아닌가요? 지금까지 어찌 보면 행복하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선생님 내면은 어떠신지요? 한이나 아쉬움은 없는지요? 때로는 꼭 붙잡고 싶은 사람도 있고,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그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유금호; 그 질문은 박선생님에게도 다른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 게 없었다면 글쓰기를 이미 중단했겠지요. 가끔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작가에게는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마저도 재산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박유하: 일반론으로 피해가시는 군요. (웃음.....)그런 것이라고 하셨는데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거나 독자들이 짐작이라도 하게 희미하게라도 좀 조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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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 여순사건, 6.25, 4.19. 5. 16등의 시대적 고통, 거기에 유별나게도 가까운 가족과 친구, 제자들과의 사별, 들이 제일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붙잡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웃음...)작가로는 불행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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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첫 사랑의 상대는 누구이고 그 과정과 결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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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 이상하게 그런 특별한 첫사랑의 기억, 그런 게 불행하게도 없어요, 그래서 한때는 근사하고 비극적인 첫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한 적도 있는데 그것도 시들해졌구요. 그렇다고 아내가 첫사랑이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뭔가 위선적인 것 같구요. 젊은 시절  여학교에 근무하면서 의도적인 여성 기피증 같은 것이 만들어져 결국 아름다운 첫사랑의 기억을 놓진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박유하: 아이구, 초등학생 때 얘기라도 하지지, 너무 선을 그으시는군요. 그럼 문학에 나오는 여성상 중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답, 내 소설 ??만적??에 나오는 ??금소예?? 라는 적극적이고 야성적인 여성입니다. 비슷한 이미지가 다른 작품에서도 늘 반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설 속이고, 실제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도망을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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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이 약아빠진 천민자본주의가 판치는 거리에서 선생님은 장점이 많은 분이라는 것은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선생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단점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고약하지요? 사모님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선생님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유금호: 젊을 때는 너무 부지런을 떨어서 피곤하다고 했어요. 수도도 들어오지 않은 30년 전 이쪽 동네 장지동으로 이사 와서는 10년 동안을 새벽에 약수터에 가서 물을 길어다 아이들 우유를 타주고, 밥 짓고, 기르고 있던 100여쌍 새 들 물을 갈아 주었습니다. 아참, 새 기르는 것은 전문가 수준입니다. 십자매에게 알을 낳으라고 하면 3,4 일 후에는 알을 낳을 정도는 됩니다. 호금조 같은 고급 새는 스스로 알을 품지 않기 때문에 호금조가 알을 낳을 기미가 보이면 그 알을 대신 부화하고 길러 줄  십자매가 같은 시기에 알을 낳아주어야 알을 바꾸어서 부화시킬 수 있거든요.


박유하: 알 낳으라고 하면 알을 낳아요? 너무 놀라워요. 지금도 그늘 아닌 그늘을 말씀하셨어요. 그럼 선생님 자신이 싫어질 때는 언제입니까? 헤헤.....


유금호: 가끔 스스로 느끼는 게으름,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아주 바보스럽고 싫어집니다.


박유하: 선생님에 대한 자제분들의 불만은 무엇입니까?


유금호: 딸아이와 아들 녀석이 있는데 나름대로 표현하지 않는 불만이 많겠지요. 제일 많은 불만은 저희들 시험이 다가오는데도 내가 놀자고 하는 게 불만이라고 그래요. 아들아이가 중 2때, 학원에 간다는 아이를 끌고 인도와 아프리카 마사이 마라를 거쳐 유럽 쪽 여행에 데리고 갔어요. 그때는 입이 튀어 나오더니 자란 뒤에는 고마워하는 것 같더군요. 딸아이는 초등학교 통신표의 가정통신문에 제발 방학 때 숙제 좀 내주지 말라고 썼다가 딸아이에게 눈총을 먹었는데 담임이 멋진 선생님이었어요. 아이들 하나, 하나에게 다른 숙제를 주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난초 한 포기 캐 오기'였고, 그 해 겨울 산에 난초를 캐러 데리고 가서 소심(素心)한 포기를 직접 캤거든요. 
 

박유하:, 아드님이 행복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게 부럽고 제가 과연 애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의 불만은 무엇이라고 짐작하십니까?


유금호: 많이 있겠지요. 아까 박선생님 말씀대로 정확하게 어떤 사람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박유하: 휴.....겨우 안개 나무라고 한 제 말을 인정하는 선에서 그치다니.....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군요. 전 실패하고 말았어요. 그건 그렇고요. 김홍신 선생의 말에 의하면 영혼과 육체를 불사른 사랑을 한 번 쯤 해보는 것은 인생의 자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자산을 가지고 계신지요?


유금호: 그런 자산이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박유하: 아흐, 멋 없어라......하는 수 없는 일이고요. 가지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

시나요? 


유금호: 성격 탓이겠지만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 역시 관계될 것입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로서는 약은 생각으로 소설만 써서 이 땅에서 살기 힘들 것 같으니까 선생을 하기로 했고, 결국은 작가 쪽이나 학자 쪽 어느 한쪽에  힘을 쏟지 못한 채, 소설가로도 학자로도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박유하: 그렇지요. 사실 소설은 미친 듯하고, 지독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인지 몰라요. 한국의 가난한 소설가들 곁에도 희생적으로 생활을 도맡아준 사람이 있더군요. 작가는 인정이나 현실적 책임을 무시하고 작품에 몰두하는 끼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여류작가들은 남자들이 피와 뼈까지 남김없이 여자에게 바치는 애정 소설을 쓰고, 남자작가들은 불현듯 나타난 묘령의 여인이 하룻밤의 사랑인지, 사랑 놀음인지를 하고 다음날 아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 그게 남녀 작가의 갈망이라나요. 윤대녕을 비롯해 그런 애정소설을 쓰는 작가가 많은데 선생님의 여행 소설에서도 그런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선생님의 의식, 무의식적 갈망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유금호: 남,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