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콤달콤 매콤한 맛 집에 얽힌 사람 이야기(마지막 회)-계간 ‘문학시대’ 2012.봄호


소설가 유금호와 수서동 ‘콩사랑 식당’

                      

                                         김 승 환(소설가)


강남구 수서동의 로즈데일 빌딩에 있는 소설가 유금호의 집필실에 들어서면 입구에 50호가 량 되는 칼러 사진과 100호 안팎의 유화 한 점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추장 부인이라나, 애인이라나, 고혹적인 가슴을 들어낸 윤기 가득한 흑갈색여인과 한 가운데 진짜 추장처럼 버티고 선 남자, 그 유금호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유금호는 1942년, 전남 고흥의 바닷가 녹동에서 과수원 집 맞이로 태어났다. 그는 그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과수원에서 겪은 그때의 폭풍우와 해일, 바다 위로 떠가던 돛단배들의 기억, 울타리 주변의 작은 동아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던 뱁새며, 오목눈이, 때까치, 종달새에 대한 추억들은 의식 밑바닥에 침전되어 늘 원형적인 향수로 작용하곤 한다.”


(원주민 화가가 그렸다는)풍경화는 고향 녹동의 ‘원형적인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초가집과 녹색으로 가득한 촌락 양 켠에 (국조인)극락조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어 유금호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되살리는 촉매가 되고 있다.


고향을 떠난 것이 열두 살, 광주서중과 광주일고를 다니는 동안 하숙집 앞에 있던 헌 책방을 통해 구해지는 문학서책을 가리지 않고 읽어댔다. 이 남독은 문학에의 열망을 잉태하고 그런 열망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바램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 벌어진 간극을 메워줄 방도는 우선 생활전선의 현실적 해결책이다. 그는 국비로 공부하고 취업도 보장되는 공주사범대학 국문과를 선택한다.

그리고 졸업하는 해인 1964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하늘을 색칠하라>가 당선된다.

소록도라는 갇혀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예술가의 꿈과 좌절, 존재에 대한 허무한 인식을 다룬 작품 세계는 뒷날, 고려시대 노예반란을 다룬 장편 <고려무(高麗舞)>나 장편 <열하일기>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는 10년이나 단절했던 글쓰기의 재가동을 이렇게 회고한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과 자각, 제자들이 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여 산화해 가던 한 시대에 무기력하게 먹어가던 나이의 의미, 그 긴 밤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서툰 글쓰기뿐이라는 것도 자각해 갔다.”


그는 1967년 여수여고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서 졸업반이던 김정수(본명 貞淑 1949년생)를 만난다. 당시 문예반장이던 그녀와 갓 부임한 젊고 유능한 작가와의 로맨스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김정수는 경희대 1학년 때인  ‘68년에 단편으로 ‘여원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79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가작 입선 된다. 행주치마만 두르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그녀의 문재(文才)는 아이들 둘이 이유식이 끝나고 밥을 먹을 때쯤 TV드라마작가의 영역에 도전, MBC TV창사 10주년 기념 TV드라마에 당선된다. 이후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은 <전원 일기>를 11년간이나 집필 한다.


유금호는 ‘69년 고대 사대 부고로 자릴 옮기면서 서울 생활이 시작 된다.

그는 김정수와 ‘74년,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선생(손장윤)을 주례로 고향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이건 낭만인가, 원향(原鄕)에의 귀향인가. 김정수의 <전원일기>도 산업화에 찌든 도시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고향의 향수를 부활시켰다. 최불암이 연기했던 ‘회장님’과 과수원도 녹동의 재현이고 드라마의 일상도 곳곳에 시아버지의 발자국이다.

둘 사이에 딸 수지(秀知)와 아들 병우(炳宇)가 있다. 병우도 드라마 작가다.


유금호는 질긴 사람이다. 그 문학적 작업의 원초적 자양분을 제공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태풍이 휩쓸고 가버린 폐허의 과수원에서 바다를 쏘아 보던 아버지는 어린 금호에게 이렇게 말 했다.

“봐라. 나무가 뿌리까지 뽑히진 않았다.”

그 뿌리에서 새 싹아 움트고 열매를 맺듯 그렇게 유금호의 소설도 꽃을 피운다. 그는 교편생활 속에서도 고려대학대학원에서 문학석사를, 경희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논문 ‘한국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연구’)를 받는다. 이것도 학문을 향한 그의 끈끈한 집념의 결실이고 어렸을 적 별명대로라면 ‘찍보’(고집물통)의 위력이다.


연도별로 저서를 훑어 보자.

‘69년 소설집 <하늘을 색칠하라>(선명문화사)   ‘72년 소설집 <깃발>(창작 문화사)  

‘77년 소설집 <한 마리 작은 나의 꿩>(금란출판사)  ‘78년 장편소설 <겨울에 내리는 비>(민성사)   ‘85년 비평집 <언어, 그 꿈과 절망>(동천사)

‘88년 비평집 <한국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연구>(동천사) ‘92년 장편소설 <高麗舞>(세계일보)  ‘92년 장편소설 <소설 열하일기>(큰 산)  ‘96년 소설집 <새를 위하여>(큰 산)

‘98년 소설집 <여자에 관한 몇 가지 이설, 혹은 편견>(남양문화사)

‘99년 장편소설 <내 사랑 풍장>(개미) ‘02년 공동소설집 <상사화 꽃 다 지고>(문학과 의식)

‘02년 소설집 <허공 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개미)  ‘04년 장편소설 <萬積>(1.2부)(이유)

‘07년 소설집 <뉴기니에서 온 편지>(이유)

이밖에 공동연구서로 ‘96년, <新 小說論>(우리 문화사)  ‘98년, <현대 소설의 이해>(문학사상사)  ‘99년, <小說, 이렇게 쓰라>(평민사)  ‘99년, <작가론> (삼영사)등이 있다.


이들 몇몇 작품에 평가를 엿 보자.

<새를 위하여>=’퇴화되어 버린 날개에 대한 상징적 절망의 성공적 형상화’(이명재)

<萬積>=‘산문정신이 무엇인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꽃피운 문장과 함께 시대를 초월한 인간사의 애절함을 느끼게 한다.’(조정래)

<한 마리 작은 나의 꿩>=’핏줄에 대한 거부와 끝내 그 핏줄의 확인으로 치닫는 숙명의 형상화’(김윤식)

<패배의 겨울>=’충족에 수반되는 환멸과 비애의 실체를 효과적으로 형상화’(천이두)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유년기의 금기에 대한 신화적 접근의 감동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절제의 미학으로 형상화했다.’(홍성암)

이들 비평의 공통적으로 들어 나듯 유금호의 소설세계는 일관되게 인간의 근원적인 꿈과 절망, 그 허무에 대한 추구로 요약 된다.


그의 역마살은 생리통처럼 떠돌아다니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속앓이다. ‘81년에 대만에서 열린 ‘한중작가회의’ 참석으로 불붙기 시작한 떠돌이는 30여 년간, 북한 말고는 세계의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브라질 아마존 강, 달밤에 인디오들과 악어 잡이도 해 보았고, 몽골 바양고비 초원의 새벽, 장작불이 타고 있는 ‘겔’ 천장 꼭대기로 기어들던 주먹만큼 큰 새벽 별 앞에서 울먹인 적도 있습니다. 안데스의 마추픽추, 그 잃어버린 도시의 한켠, 장의석 앞에서 천길 골짜기를 흘러가는 우르밤바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혼자 소주를 마시기도 했고, 아프리카 잠바브웨 빅토리아 폭포를 멍하게 건너다 본적도 있습니다. 어느 겨울, 운남성 옥룡설산(玉龍雪山) 아래에서 나시족 늙은 샤먼과 손을 잡고 그들 제의에 함께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쓸쓸한 얼굴의 나 자신과 마주 하는 것으로 그 여행이 끝나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습니다.”

그런 체험이 책으로 엮인 것이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었네>(2005/ 개미)다. 그는 말한다. “여행도 어쩌면 또 하나의 꿈꾸기였다.” 그러나 그 꿈꾸기는 새로운 소재가 되어 작가의 키 보드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78년 동서울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교무처장, 학장대리를 역임한다.

‘86년 목포대학 국문과 교수로 자리 잡으며 정년 퇴직(2007)을 맞을 때까지 서울과 목포를오르내렸고 이후 명예교수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여전히 ‘교수’다.


“뱃사람한테서나 맡을 수 있는 비릿한 바다내음,…, 예순을 훌쩍 넘긴 그에게서 사내, 아니 수컷의 야성을 보았다고 하면 결례일까.”(토요저널/ 이명지 기자) 정말 그에게서 감춰진 ‘수컷’의 야성을 보았다면 놀라운 심미안이다. 유금호 소설의 성애 장면은 거침 없이 농밀의 파도를 타지만 대부분 잔잔한 서정의 바다에 미끄러지는 조각배 같다.


“구렁이들은 말여. 좆이 두 개라 한번 붙었다 하면, 이거 한 개가 하루 낮씩이거덩…”

장편 <만적>애서

“젖었어, 창피하게 속옷이.” “몸이 젖을 수는 있지만, 가슴까지 젖는 일은 겁나는 일이라고.” 단편 <뉴기니에서 보내는 편지>에서

뱀의 생식기 표현은 방콕여행의 체험적 산물이다. 그는 수필 <송충이 튀김>으로 그 몬도가네식 보양식의 처연함을 고발하고 있지만 그의 실험적 맛보기 기행(奇行)은 <청설모 볶음>에까지 이르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집필실 한켠에는 물도 졸졸 흐르는 작은 인공 수풀이 있다. 습도 조절을 위한 것이라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리라. 그를 사글세방의 신혼생활에서 쫓아낸 ‘오색딱따구리’나 비봉산 자락에서 건져낸 한국 춘란에의 애정은 급기야 ‘기르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는데, 이것도 다 정신적으로는 원초적 귀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좌우간 그 덕에 나도 난 화분 하나를 얻어 아직도 죽이지 않고 키우고 있다. 실제로 그는 양평 변두리 오지에 녹동의 고향집 비슷한 시골집도 갖고 있다. 그곳에서 입술을 까맣게 물들이던 오디 맛과 흐르는 물에 맨발을 담그고 마시던 술자리도 유금호 아니면 연출이 안 되는 실경(實景)이다.

그는 자기 관리에 냉엄하지만 남에게는 따뜻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먼저 떠난 이태원, 유재용, 김용우, 오찬식 등과의 생전에 교유는 말할 것도 없고 여성에게도 배려가 남다르다.

<송파문학>의 회장(3회 연임)으로 그 개성 강한 여인들과 동료를 이끌어 나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학의 집. 서울’의 이사로 추대된 것이나 인우회(원로 문인의 모임)의 막내(나이로는)이면서도 장형(長兄)같은 몸가짐은 또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의 시인 윤강원의 죽음에 대한 회상(거기에 아름다움이 있었네)은 한 편의 시다.


우리(시인 강민과 나)는 이 유쾌한 작가와의 ‘먹기 모임’의 주요 멤버다. 정확한 표기로는 ‘식객’이 맞다. 그는 강민과 만날 때면 부인의 선물이라면서 니혼슈(日本酒)를 들고 나온다.

그 사무실 아래층 식당가에 수더분한 인상의 여인이 운영하는 <콩사랑>(02-3411-1308)이라는 집이 있다. 매일 아침 국산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 이 집 주요 메뉴는 두부를 주로 하는 요리인데, ‘두부전’ ‘비지요리’ ‘청국장’ ‘두부김치’ ‘된장찌개’ 등이 주 메뉴이지만 태안 바닷가 출신답게 해물요리도 곧잘 한다.

‘말린 우럭’으로 끓여내는 서해안식 ‘우럭젓국’과 ‘우럭찜’은 술안주로 괜찮고, 정식 메뉴에는 없지만 글쟁이 몇이 가겠다고 하루 전 쯤에만 통고해두면 가까운 가락동 수산시장에 가서 ‘낙지’나 ‘문어’, ‘생굴’ 등을 사다가 초무침을 해내거나 ‘도루묵 구이’를 준비해서 내놓기도 한다. 그 마음씀씀이가 꼭 유금호의 여동생같이 살갑고 정겹다.


“작가는 무엇이나 쓸 수 있지만 어차피 자기가 쓸 수 있는 것만 쓰는 것이 아닌가.”(유금호/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그렇다. 음식도 이와 같아서 먹을 만큼만 먹게 되어 있건만 아지 못쾌라. 유금호와 만나면 그 분수를 뛰어넘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수상] 제4회 후광문학상, 제24회 한국소설문학상, 제17회 PEN문학상, 제1회 박영준 문학상, ‘한민족 글 문학상’ 제3회 한송(寒松) 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