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기'가 보여준 것―유금호, 「내 친구, ()씨」 (한국소설 8월호)
                                                            
                                                         장 두 영
 
 
  유금호의 「내 친구, 장씨」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제미의 절묘함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소설은 얼핏 보아, 참으로 단순하고 밋밋하다.
  눈길을 끄는 사건의 발생 하나 없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물 간의 대화도 많지 않아 인물 사이의 관계라든가 갈등의 포착도 쉽지 않다.
 그러나 단조로워 보이는 소설의 문장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산골짜기 아침 안개 너머로 장씨
가 서있는 듯한 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그 곁에는 만월스님과 누렁이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애써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독자의 뇌리에 남게 되는 그
산뜻한 느낌이란 '보여주기’를 억제한 끝에 도달하게 되는 ‘스며들기’의 미학이 창출한 결과물이 아닐까.
 
  장씨는 심한 말더듬이다.
  말더듬이라서 더욱 말수가 줄어든 것일까, 이름을 물어보아도 그저 자신의 성만을 알려줄 뿐이다.
  대신 장씨는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푸석푸석한 가을날 수숫단 냄새’, ‘나무냄새’, ‘다시 마른 풀냄새’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서 풍겨오는 냄새는 ‘이름’보다 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이지적으로 전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흐릿하고 모호하게, 감성적으로 더욱 풍부
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적인 전달 방식이다.
 
   소설의 곳곳에서 얼굴을 들이미는 아침 안개 같은 것이 그러한 속성과 닮아 있다.
   아침 안개는 그 형체와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흐릿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안개가 뿜어내는 습기와 냄새,
 촉감 나아가 특유의 고고한 서정적 분위기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기에 눈이나 귀로 포착되는 것보다 한
층 더 풍성한 존재감을 지닌다.
 
    산골의 밤은 금방 새카맣게 변해서, 모닥불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가 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적 속에 소
쩍새 울음이 계속되었던 탓이었는지 모른다.
  기르던 ‘잉꼬’가 죽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유치원생 딸아이가 모이를 주던 새여서 아이가 많이 울었다고 했다.
딸아이가 죽은 새를 묻고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꽂아준 것을 보았는데, 아이가 그 무덤 위로 며칠째
 계속 물뿌리개로 물을 주더라는 것이다.
…… 꽃씨도 물을 주면 싹이 나지 않아? 딸아이에게 해줄 말이 없어서 돌아서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장씨는 금방 오두막집 뒤 죽은 나무를 휘감아 올라간 칡덩굴과 머루덩굴, 더덕과 도라지, 옻나무들로
화제를 바꾸어버렸다.(100)
 
   평소 말수가 적어 농사와 관련된 최소한의 몇 마디만을 말하는 장씨지만 예외적으로 딸 이야기를 꺼내어 그
속마음을 얼핏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씨의 말보다 주목을 요하는 것은 그가 말을 꺼내도록 유도한 분위기와 그가 급히 화제를 돌려 회피
하려는 어색한 머뭇거림이다.
  사위는 새카만 정적에 휩싸여 있고, 소쩍새 울음소리가 장씨의 마음을 자극했다면 그가 꺼낸이야기 속의 딸
아이 역시 그의 마음속에서 그러한 정적과 고요함의 심상으로 남아있을 터이다. 딸아이의 유치원생 시절을 이
야기했다면 그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데 돌연 화제를 바꾸어버린다는 것은 그 뒤의 이야기를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 내지 어려움이 장씨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꼬리를 문다
   여기에 이르면 장씨의 딸은 어린 나이에 이미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희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죽은 아이의 혼이 소쩍새로 화한 것이리라.
  적막한 산골 어둠속에서 들리는 소쩍새 소리는 구슬프게 불여귀(如歸)외치는 딸아이의 목소리며, 쓸쓸한
수숫대 냄새를 지닌 장씨의 주변을 감도는 환청의 소리다. 그가 급하게 화제를 바꾸고 억제한 끝에 그 뒷이야기
는 무수한 가지를 뻗으며 확장된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처연함,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을 인생의 신산함에 대한 느낌으로 한없이 이어진다. 명시적
으로 확인되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독자의 마음에는 장씨의 인생과 감정이 안개처럼 스며든다. 짧고 억제된 이야
기에서 발화된 것보다 깊은 내면의 소리를 발하는 것이 이 소설이 도달한 미학의 한 절정이다.
 
  소설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장씨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장씨 곁에 붙어있던 ‘누렁이’가 사라진 뒤 한 달 뒤 장씨도 그 골짜기를 떠나버렸다 한다.
  그가 떠날 즈음 다시 마른 풀냄새가 났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가 떠난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저 인연이 다 되었기에 그는 떠난다고 말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묘법인가.
  그러나 그가 떠났음에도 장씨가 집 주변에 ‘스며들듯’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스며들듯 하는 느낌은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섭리를 암시하고 있지나 않는가. 고요한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만나
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시적 경지에 근접한다.
  짧은 분량의 제한 속에서 모자람이나 넘침 하나 없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말하거나 보여준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하였기에 그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감흥의
시작이라 하겠다.